6살 딸아이와 한달 뒤에 태어나는 뱃속의 아이를 두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두 아이의 아버지 고 양시원 주무관의 억울한 죽음을 풀어주세요.
작성자 : 이 * * 작성일 :2022-10-06 조회수 :92
존경하는 육군참모총장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고 양시원 주무관의 가족입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36년의 짧았던 삶 속에 군에서만 11여년(장교로 복무한 7년 포함)을 몸담으며 성실하게 생활했지만 6살 딸아이와 한달 뒤에 태어나는 뱃속의 아이를 두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제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 고 양시원 주무관의 억울한 죽음을 풀어주세요.’ 고 양시원 주무관은 11여년간 군에서 성실하게 근무하며 부여된 책무에 책임감을 가지고 항상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 '19년 1월 1일부 군무원으로 임용하여 50사단 동원참모처에 보직되어 문제없이 잘 생활해왔으나 작년 '21년도 동원처에 공석이 생겨 기존에 해오던 업무에다가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공석 직위의 업무 또한 추가 분담되어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가 급격히 증가하였습니다.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로 인하여 건강상태가 나빠졌고 저 또한 홑몸이 아니라 뱃속에 둘째 아이가 있어서 컨디션이 좋지 못해 이러한 이유들로 육아휴직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평소 부대로 출근하는 것에 대해 무리가 없었고 재밌게 다니던 곳이기에 당시에는 크게 생각하지 않고 넘어갔습니다. '22년 3월 지난 1년간 근무 성적으로 받게 되는 상여금 또한 오빠는 늘어난 업무량에 비해 직속 선배가 오로지 평정을 독점 할 수 밖에 없는 체계로 인해 좋지 못한 평정을 계속 받아왔고 상여금 또한 불리하게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매년 불리한 조건으로 받는 근무 평정과 성과상여금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지만 이 부분에 대해 올해는 제게 “성과 상여금 또 꼴찌군…” “일하기 싫군…”이라며 카톡을 보내며 억울해하고 힘들어 하였습니다. 이 후에는 6월에 있을 육군본부 동원 감사와 민원 업무가 부담된다는 말들을 지속적으로 해 왔고 힘들다는 말과 함께 하루하루를 겨우 보내는 것을 옆에서 지켜봤습니다. 그러던 중 3월 중순 휴가를 다녀온 뒤 제가 코로나 확진되고 딸아이가 확진되고 남편이 차례로 확진되면서 격리를 하여 3주간 출근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격리 중에도 꾸준히 본인이 책임감으로 최선을 다해 업무 처리를 해 나갔습니다. 군부대 업무 자체가 일반적으로 컴퓨터로 재택근무가 가능한 사안이 아니고 부대 내 시스템 자체로만 업무처리가 가능합니다. 격리 중에도 남편은 업무를 처리 하기에 제한된 상황이었지만 본인 업무를 나몰라라 하지 않고 처리하려고 노력했고 동원처 동료들에게 의도치 않았지만 격리로 죄송해하면서 전화 통화로만 업무를 처리하고 부탁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힘들어했고 또 누군가 "이번이 마지막이다. 마지막으로 해준다."라는 말을 하는 것을 제가 옆에서 들었고 이 부분에서도 괴로워 했습니다. 휴가나 격리 등으로 부재시 대리근무자가 임명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급하게 처리해야 될 업무라면 대리근무자가 어느 정도는 해주어야 하는데 격리 중인 사람이 괴로워하며 꼭 처리해야만 했던 일들인가, 또 마지막으로 해준다는 말이 격리로 인해 업무 처리가 제한된 남편의 입장에서 얼마나 죄송하고 괴로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본인의 마음 속에 곪아가는 상처는 신경 쓰지도 못하고 어쩔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안절부절 못하며 차라리 출근하고 싶다 말하며 스트레스가 계속 누적되었습니다. 격리해제 후 출근하기 전날에도 밀린 업무를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에 잠을 이루지못하여 저는 대리근무자가 해주었을거라 위로를 했지만 야속하게도 4월 7일 출근 한 날 기다렸다는듯 폭탄처럼 업무가 쏟아졌습니다. 업무의 일 처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다른 업무 관련 연락이 계속 온다며 더욱 힘들어했습니다. 이러한 부분에서 군 수사관의 조사간에 동원처에 가장 높은 직위에 있는 동원참모라는 사람은 오래 쉬어서 업무 폴더와 파일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며 남편의 업무적 태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격리로 인해 출근만 하지 못했지 자가격리 중에도 할 수 있는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해왔고 관련하여 통화기록도 다 남아있습니다. 무엇보다 격리 후 출근해서 남편이 힘들어했던 부분은 동원처 내부 분위기 였습니다. 코로나 격리 후 복귀한 동료에게 몸은 괜찮냐는 따뜻한 말이 아닌 오래 쉬다와서 일처리를 빨리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사늘한 눈초리에 부대에 한 시라도 있기 힘들어 했었습니다. 이렇게 남편은 격리되었다가 복귀 후 4월 7일 업무 및 분위기 등으로 너무 힘들어하여 퇴근 후 집에 들어오자마자 제 어깨를 붙잡으며 ‘살려달라’고 했습니다. 당장 내일 죽을 것 같은 얼굴로 살려달라고 하니 이렇게 둬서는 큰 일이 나겠다 싶어 육아휴직 신청을 허락하였고 이러한 가운데에서도 사무실 동료들의 따가운 시선을 느껴 와이프인 제가 임신중이거니와 아이를 돌봐야할 명목으로 육아휴직 신청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본인의 마음이 여의치 않았던지 동원참모에게 솔직하게 업무적 부담과 민원으로 힘들어서 한 결정이라고 말씀드린 후 육아휴직 신청을 취소하였고 제게 그동안 선택 결정으로 힘들었으나 솔직히 말씀 드리고 일을 하니 힘들었던게 해소가 되고 일을 하니 뿌듯하다고 좋아하며 책임을 다해 일처리를 했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 후에도 남편은 동원참모와 상담했던 힘들어한 업무적인 부담과 어려움은 해결 되는 것이 아니라 묵인되고 업무적 부담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우울증과 번아웃으로 상태가 악화되었습니다. 이 부분이 반복되어 최종적으로 4월 23일 동원참모와 보좌관의 권유로 업무과중과 우울증으로 육아휴직을 선택하였습니다. 육아휴직을 최종 결정한 날에도 고인 본인의 힘듦이 아닌 그저 이러한 상태 때문에 동원처 동료들에게 민폐가 되어 분위기가 좋지 않다며 자기가 동원처에서 같이 근무하는 것을 아무도 바라지 않는것 같다며 속상해했습니다. 이 후 남편은 육아휴직 시작 전까지 출근하려고 했으나 동원참모님 남은 휴가를 모두 사용해 5월 6일 육아휴직 날까지 출근을 하지 말라 하였고(강제휴가 조치) 5월 3일 인수인계를 하기 위해 출근을 했지만 동원처 내에서는 인수인계를 할 필요가 없다며 돌려 보냈습니다. 그로 인해 본인이 맡았던 업무에서마저 박탈당하는 마음에 자존감이 많이 상실이 되었고 가장 믿고 따르던 직속 선배이자 업무 대체자 역시 남편의 업무가 제대로 처리 되지 않고 있었다라는 말을 업무 라인으로 메일을 보내어 고인의 자질을 훼손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렇게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 4월 중순 처음으로 서대구 대동병원에서 진료를 받게 되었고 입원만 강제하던 곳이기에 연고지인 광주로 내려와 심리와 약물치료를 병행하며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육아휴직으로 인해 5월 가장 유력한 승진 대상자에서 박탈당하게 되어 상대적 박탈감을 많이 느꼈고 이로 인해 상태가 호전되기는커녕 삶의 회의감을 느끼는 등 우울증은 더더욱 악화되었습니다. 저는 군 조직에서 육아휴직과 동시에 승진 자격이 박탈된다는 사실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양립지원에 관한 법률] 제 19조제4항 및 고용노동부 사이트에 사업주의 조치필요사항에 '육아휴직 실시근로자에게 휴직후 원직복직을 보장함으로써 육아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퇴직금 산정, 승진 및 승급등에 있어 불이익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기재되어있습니다. 또한 장교, 부사관들은 육아휴직 기간에 진급을 하는 것을 보고 듣기도 하였습니다. 지금같이 출산 및 공동육아를 권장하는 국가에서 그리고 공직에서 육아휴직시 이런식으로 불이익을 받아야 된다는 사실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 이 역시 고인은 승진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본인이 참지 못하고 육아휴직을 결정했다며 많이 자책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5월 중순경 부터는 남편은 같은 직렬 선ㆍ후배들 가운데서 쓰레기가 되었다고 제게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아픈 와중에 인수인계를 하려고 노력하였고 현재에는 제대로 된 일상생활이 힘든데 이런 사람에게 업무를 바라고 정상적인 사고를 바라는 사람들이 쓰레기가 아니냐"며 남편을 위로 했으나 남편에게는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망 후 알게 된 사실은 직속선배는 신랑의 업무를 대신 하며 조직편성관들께 보내는 자체메세지에 지금까지 해왔던 신랑의 업무를 잘 하지 못해서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서 라며 업무자체를 비난했던 것이였습니다. 남편이 위로 받고 싶었던 사람은 가족, 친구, 다른 동료들이 아니라 따로 있었습니다. 직속 선배이자 3년 이상 믿고 따르던 같은 직렬 선배에게 무시 당함으로써 모멸감을 느끼고 본인이 지금까지 해 왔던 업무 처리에 대한 인정을 받지도 못했던 부분이 고인에게는 큰 아픔으로 다가오게 되었고 그로 인한 죄책감에 수없이 망설이다 부담을 드려 죄송하는 메세지를 보냈지만 그 선배는 전화 한 통은커녕, 문자 한통 해주지 않았습니다. 사실 고인이 육아휴직을 강력히 추진했던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믿고 따르던 직속 선배가 본인이 승진하고 다른 곳에 발령 받기 전 사단 업무가 힘드니 양시원 주무관이 육아휴직을 하면 양시원 주무관의 공석을 채워 자동적으로 대대로 재배치 될 수 있게 해주겠다는 말 때문이였습니다. 그러나 양시원 주무관이 선택한 시기가 적절하지 않았던지 그 전에 약속과는 다르게 6개월뒤 너는 이 자리에 무조건 복직하라고 했고 그 말 한마디에 고인은 하루에도 수십 번 몸을 바들바들 떨며 인수인계도 제대로 안 해주실 것 같다 아마 한 번 미워한 사람은 연락도 안 받을 것이라며 불안해 하였고 보복으로 업무를 더 과중 시킬 것 같다 라는 말을 해 왔습니다. 사망 이 후 "꼭 그렇게 했어야 했냐"는 질문에 역시나 선배라는 사람은 "고인의 업무가 자신의 업무가 되니 화가나 고인의 전화를 차단했다"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아픔에도 아프다고 쉽사리 말하지 못하고 눈치를 보며 아픈것 역시 본인의 책임이고 아픔에도 아파하지 못하고 죄책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위치에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육아휴직중, 처부 사람들에게는 괜찮냐는 단 한 통의 문자도 전화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 군이라는 조직이 따뜻한 곳이라고 생각했던 저는 남편이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지 가늠이 되지 않아 영정사진 속 제 남편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 출근하기전, 매일 저와 딸아이 그리고 뱃속에 있는 아가에게 사랑한다고 오늘도 엄마 괴롭히지말고 있으라며 뽀뽀해주던 사람이 스트레스 우울증으로 살이 2주만에(4월 7일 부터) 7키로 가량 빠지게 되었고 사랑하던 저(아내)와 6세 딸 아이를 돌보지 못할만큼 아파했습니다 이런 외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부분이 뚜렷했음에도 불구하고 군대라는 집단은 부대내에 있는 심리 센터를 이용하여 고충을 해결하려 하였는지 의문입니다. 사람이 아닌 단순한 일하는 도구로 생각하지 않았는지 생각이 듭니다. 이처럼 업무부담, 부서 내 박탈감, 우울증 등 부서장의 고충상담에도 불구하고 원론적인 해결책이 아닌 단순 휴가 조치로 현상황을 회피하려 하였으며 이후 부재에 대한 업무 분담, 업무강도 조정, 부서원들의 이해교육 등은 실시하지 않아 부서원들이 고인에대해 원망만을 사게 만들었고 결국 있어서는 안될 2차 피해가 발생하였습니다. 6월 당시 사람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감사가 더 중요한지 50사단은 감사에 치중하여 처부 당사자들의 수사가 진행되지 않다고 알고 있고 고인의 죽음에 석연치 않아 하며 업무상의 힘듦으로 인한 우울증이 아닌 고 양시원 주무관이 가장으로서 걱정할 수 있는 금전적인 부분문제로 인해 이런 선택을 하게 되었다고 가족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장례식장에서 보좌관의 행태등 고인의 인격을 모독과 명예훼손까지 하고 있습니다. 장교로의 7년4개월 그리고 군무원 3년4개월의 시간이 무색하게도 원래 업무에 성실하지 않았다고 말하며 괜히 이로인해 본인들만 안 받아도 될 조사를 받게 되었다며 이런 저런 변명과 책임 전가를 가족으로 돌리는 사람들의 마음에 비통한 심정입니다. 참모총장님 아이 아빠는 군 생활을 너무나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 하던 사람입니다. 그랬기에 저에게도 군무원이 되어 같이 일하자고 권유 하였고 저 역시도 군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던중 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동안 신뢰했던 군이라는 조직이 이토록 남편을 외롭고 쓸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참모총장님 저는 6살인 첫째와 태어날 날을 한 달 남겨둔 아이를 임신한채 사랑하는 남편을 한순간에 잃었습니다. 아가는 아빠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 아빠를 잃었고 6세 딸 아이는 그렇게 사랑하던 아빠를 더이상 만날 수도 만질 수도 없습니다. 얼마나 괴로웠으면 그렇게 예뻐하고 사랑하던 아이와 뱃속에 아기를 두고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그의 마음이 느껴져 더이상 삶의 희망이 없습니다. 그저 비통하고 허망할 뿐입니다. 사랑하는 내 남편이자 내 오빠이자 내 사람은 더이상 움직이지도 않고 그 어떠한 말도 없이 그저 조그마한 칸 안에 들어 있습니다. 모두가 제 마음 같을 순 없지만,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는데 무려 3년의 시간동안 함께 일 했던 동료들에게 이러한 취급을 받고 마지막까지 인정 받지 못하고 귀찮은 일거리 취급 당하며 본인이 일했던 자리에 그 흔한 국화꽃 한 송이 없이 그 자리에는 병사가 자리해 업무 처리를 하는 등 아주 쓸쓸하고 외로운 죽음을 맞이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 아빠를 생각하면 애통한 마음에 잠 한숨 밥 한 숟갈이 목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부디 위의 내용을 토대로 명명백백히 수사가 진행될 수 있도록 고인의 인생의 1/3 을 보낸 군이라는 조직이 더이상은 아이 아빠를 외롭게 두지 않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태어날 아기와 6세 아이에게 아빠는 나라를 위해 명예롭게 돌아가셨다는 말을 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명명백백한 수사가 하루 빨리 진행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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